독서 시간: 9 의사록
가난한 사나이는 아이가 열둘이나 딸려 있어 밤낮 없이 일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열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자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사나이는 큰길로 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세례식때 아기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 만난 이는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나이의 속마음을 벌써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쌍하구나. 세례식에서 아기의 대부가 되어 주마. 그 아이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잘 보살피겠다.”
“당신은 누구죠?”
사나이가 물었습니다.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그렇다면 당신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있는 사람에게만 주고 가난한 사람은 굶주리게 놓아 두니까요.”
사나이는 하느님께서 부와 가난을 얼마나 지혜롭게 분배하시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하느님을 등지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얼마를 가니 악마가 나타나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무얼 찾고 있나? 만일 아기와 인연만 맺으면 나는 산더미 같은 금화와 이 세상의 온갖 쾌락을 그 아이에게 선사할게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악마다.”
“그렇다면 당신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을 속이고 못된 길로 빠뜨리니까요.”
사나이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얼마 안 가서 젓가락처럼 가는 다리가 쪽빠진 죽음의 신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역시 나밖에 없을걸.”
“당신은 누구죠?”
사나이가 물었습니다.
“나는 죽음의 신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공평하지.”
“당신이라면 안성맞춤이겠군요. 당신은 부자건 가난뱅이건 차별을 두지 않으니까요. 우리 아이의 세례식에 와 주십시오.”
“너의 아이를 돈 많고 이름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나를 친구로 둔 사람은 평생 아쉬운 것을 모르고 살게 되거든.”
“다음 일요일이 세례식입니다. 잊지 말고 꼭 오세요.”
죽음의 신은 약속한 대로 나타나서 아이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아이가 장성하자 어느 날 죽음의 신이 나타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일렀습니다. 죽음의 신은 청년을 숲으로 데려가서 그 곳에 자라는 약초를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세례식 선물을 주지. 너를 이름난 의사로 만들어 주마. 네가 병든 사람에게 불려갈 때마다 나도 거기 나타나겠다. 내가 환자의 머리맡에 있으면 너는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라. 그러고 나서 환자에게 이 약초를 조금 주어라. 그럼 나을거다. 하지만 내가 환자의 발치에 있으면 환자는 내 사람이다. 가망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제 아무리 명의라도 그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 다만, 약초를 네 멋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렇지 않았다간 네가 큰 봉변을 당할 것이야!”
얼마 안 가서 젊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픈 사람을 보기만 해도 증세를 알아 보고 그 사람이 나을지 죽을지를 알 수 있다는거야.”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와서 많은 돈을 내고 갔기 때문에 젊은이는 곧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왕이 몸져 누웠습니다. 의사는 부름을 받고 가서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인지 판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의사가 가까이 다가서 보니 죽음의 신이 왕의 발치에 서 있었습니다.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죽음의 신을 속이는 방법이 없을까!‘
의사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중에 꾸지람이야 듣겠지만 그분은 나와 특별한 사이니까 눈감아 주겠지.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몸을 돌려 죽음의 신이 머리맡에 가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약초를 주었더니 왕은 차츰 기운을 차려서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신은 의사를 찾아가 삿대질을 하면서 험상궂은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잘도 속여넘겼겠다. 너와 특별한 사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이번 한 번은 눈감아 주지.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런 짓을 했다간 네 몸도 성치 못한다. 내가 직접 와서 너의 목숨을 빼앗겠어!”
얼마 안 가서 공주가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무남독녀가 앓아 눕자 왕은 밤낮 없이 흐느껴 나중에는 눈이 퉁퉁 부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왕은 누구든지 공주를 살리는 사람은 사위로 삼고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포고를 내렸습니다. 공주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간 의사는 죽음의 신이 공주의 발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는 공주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고 공주의 남편이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황홀한 생각에 젖은 나머지 그만 죽음의 신과의 약속을 잊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신은 눈을 부라리며 손을 치켜들고 여윈 주먹을 움켜쥐어 으름장을 놓았지만 의사는 본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아픈 공주를 들어올려 머리를 발이 있던 자리에 놓고 약초를 주었습니다. 공주는 뺨이 금세 발그스름해지면서 다시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죽음의 신은 또다시 우롱당했음을 알아차리고 의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너와는 끝장이다! 이제 네가 죽어야 할 차례야.”
죽음의 신은 얼음장 같은 손으로 의사를 움켜잡았습니다. 의사는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의 신은 젊은이를 지하의 동굴로 끌고 갔습니다. 그 곳에는 수없이 많은 양초들이 무수히 많은 줄을 이루면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긴 양초, 짧은 양초, 중간치 양초가 섞여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어떤 양초는 불이 꺼지고 어떤 양초는 새로 불이 붙었습니다. 작은 불꽃들은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면서 타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고 있었습니다.
“보다시피 이 양초들은 사람의 생명의 불꽃이다. 긴 양초는 아이들 것이고 중간치는 결혼해서 한참 재미있게 사는 부부, 짧은 양초는 나이든 사람들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이와 젊은이도 짧은 양초를 가질 때가 있지.”
“제 생명의 양초를 보여 주세요.”
자기 것은 아직도 제법 길 거라고 여기면서 의사가 말했습니다.
“저거다. 보이지?”
죽음의 신은 밑둥만 남아 꺼지기 직전에 있는 양초를 가리켰습니다.
“아, 저에게 새 양초를 주세요! 저도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왕도 되고 아리따운 공주와 결혼도 하고 싶습니다.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안 된다. 한 양초가 꺼지기 전에는 새 양초를 켤 수가 없는 법이야.”
“헌 양초를 새 양초에 갖다 대세요. 그럼 헌 양초가 꺼져도 새 양초에 불이 옮겨 붙을 것 아닙니까.”
젊은 의사는 애처롭게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신은 의사의 소원을 들어주는 척하고 길쭉한 새 양초를 집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복수를 할 셈이었던지라 일부러 헌 양초를 떨어뜨려 불꽃을 꺼뜨렸습니다. 의사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결국 죽음의 신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과학적 분석을위한 정보
지표 | 값 |
|---|---|
| 문자 수 | 3.189 |
| 편지 수 | 2.255 |
| 문장 수 | 106 |
| 직접 화법 비율 | 38,2% |
| 모티프/태그 후보 | 그림 형제 |
| 제외된 지표 | 신뢰할 수 있는 분절 없이는 이 언어의 단어 및 음절 기반 지표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













